오늘은 부처님께서 태어나신지 2649년 되는 날입니다. 부처님이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나시자마자 북쪽으로 일곱 걸음 걷고 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신(神)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나 깨달음을 얻을 부처님의 절대적인 자신감의 표현이자 또한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선언으로서, 인간 존중 선언이기도 합니다. 평범했던 한 인간이 오랜 시간 노력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인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이 문구에서, 모든 인간에게 부처님처럼 가장 존귀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인도는 다섯 계급이 존재하고 있어서 계급간의 차별이 있다는 걸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제 1 계급인 브라만, 제 2 계급인 크샤트리아, 제 3 계급인 바이샤, 제 4 계급인 수드라, 그리고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인간 대접도 못 받고 가축 취급 받는 불가촉 천민인 달라트. 아직까지 이 계급의 존재로 인해 이사의 자유나, 직업의 자유가 없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차별이 심하거늘, 3천 년 전 부처님 당시는 어떠했겠습니까. 지금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지금보다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사람의 계급은 중요하지 않고 누구나 수행만 하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외치신겁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선언한 것입니다. 사람이 출생 계급이나 신분 또는 창조주 신(神)에 의해 종속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그 깨달음의 행동을 할 때, 곧 자기가 부처임을 자각하고 행동으로 보여야지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현대에 와서는 자기 혼자만 잘난 사람인, 독선적인 사람을 비유해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니 굉장히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초기 경전인 『디가 니까야』, 『맛지마 니까야』 등에 의하면, 붓다는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나자마자 북쪽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나서 곧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다시 태어남은 없다.” 여기서 “나”라고 하는 것에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 나는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되기 전인 싯탈타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 되기도 하지만, 중생들 즉 인간을 포함 해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가진 누구나 다 불성이 있기에 가장 뛰어나고, 생명을 가진 누구나 다 불성이 있기에 가장 위대하고, 생명을 가진 누구나 다 불성이 있기에 가장 존귀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다시 태어남은 없다. 이 말은 인간 싯탈타가 다시는 윤회에 들지 않겠다는 다짐이자 선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금 전 여러분들이 하신 반야심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법의 공한 모양은 불생이요 불멸이요 불구이며 부정이요 부증이며 불감이라.“ 존재들의 공한 모양은, 불성을 가진 모든 존재들의 공한 모습은, 태어남도 없으며 죽음도 없고, 더럽지도 않으며 깨끗하지도 않고, 증가하지도 않으며 줄어들지도 않느니라.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다시 태어남은 없다는 이 말은 모든 생명들은 불성을 가졌기에 누구나 다 다시는 태어남도 없는 윤회를 벗어 날 수 있다는, 모든 생명들은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위대한 선언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니까야 말씀이 중국에서 번역 된 『장아함경(長阿含經)』을 보면 붓다는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은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천상천하 유아위존 요도중생 생로병사[天上天下 唯我爲尊 要度衆生 生老病死]”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내가 존귀하다. 요컨대 나는 중생들을 생로병사에서 건질 것이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번역되다보니 부처를 신으로 모셔지게 되며 수행의 대상, 즉 수행해서 생사해탈 하신 먼저 깨달으신 분이 아닌 인간은 도저히 다가 갈 수 없는 신앙의 대상으로 되게 됩니다. 중국에 당나라가 멸망하고 분열의 시대인 오대십국 시절, 저 멀리 광동성의 깊은 산골 운문산에 계셨던 문언 스님이 오늘같이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열린 법회에서 몇 천 명이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부처님이 태어나시면서 일곱 걸음 걸으시고 “천상천하 유아독존-하늘위나 하늘 아래에서 오직 나만 존귀하다”라고 하였을 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이 몽둥이 한 방으로 부처님을 때려 죽여 개의 먹이로 주었을 것이다. 이 말이 입소문을 타고 중국 전역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신(神)이신 부처님을 감히 때려죽인다니. 부처님을 때려 죽여 개 먹이로 준다니. 당시 분열 된 중국에는 많은 나라도 있었지만, 많은 종파도 있었답니다. 계율을 수행하는 율종, 불교 경전을 수행하는 화엄종, 법화종, 유식을 수행하는 법상종, 관세음 보살님 등을 모시는 관음종, 나무아미타불 기도를 하는 진언종 등등 셀 수 없는 종파가 있었는데, 종파 이름은 다를 지라도 다 같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교주로 모시고 있었기에, 저 멀리 광동성의 운문산이라는 깊은 산골에 사는 문언이라는 스님이 부처님을 때려 죽여 개 먹이로 준다는 말에 중국 전역이 문언스님에 대해 비난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언 스님에 대한 비난은 얼마 안가 찬탄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황제뿐만 아니라 중국 각지에 왕이나, 정승 장군 귀족 등등이 참선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수행을 열심히 하여 깨달으신 재가 불자들도 많이 있었답니다. 그 분들이 수행하여 깨달아보니 운문산의 문언스님이 맞는 말을 하셨던 겁니다. 우리들은 눈에 보이면 있고, 눈에 안보이면 없다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부처라는 신도 만들어 내고, 부처라는 모양도 만들어 내고, 그 모양에 자신을 맞춰 살고 있었던 겁니다. 운문산의 문언 스님은 그 부처라는 모양을 과감히 부셔버리고, 인간이 부처가 될 수 있고 불성을 가진 모든 생명체는 그 무엇일지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길을 다시 한 번 더 알려주신 겁니다. 분열 된 중국은 다시 송나라가 건국되며 통일이 됩니다. 통일 된 중국 송나라와 같은 시대인 우리나라의 고려에 순천 송광사의 진각국사 혜심 스님이 『선문염송(禪門拈頌)』이라는 책을 쓰셨는데 그 책의 두 번째를 보면, “석가모니 세존께서 태어나셨을 때 일곱 걸음 두루 걷고서 사방을 둘러본 후,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오직 나만이 존귀할 뿐이다.’ 그런데 운문산의 문언 스님은 왜 ‘내가 당시에 그 광경을 보았다면, 한 방에 때려죽이고 개에게 먹이로 주어서 천하의 태평을 도모했을 것이다.’ 했을까? 이것을 아신다면 여러분이 일생을 사시고 마지막에 눈을 감으시며 다시 윤회에 들어갈 때 무섭지 않으실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이렇게 외치실 수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 이것이 마지막 태어남이다. 다시 태어남은 없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저도 거기에 한 말씀을 더 보태겠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신을 정말 사랑합니다. 당신은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당신은 저에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당신은 정말 좋으신 길 안내자이십니다. 당신은 저를 중생의 고뇌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당신은 저를 윤회에서 멈추게 해 주셨습니다. 당신은 저를 어둠속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당신은 저를 생사해탈 하게 해 주셨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신을 정말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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